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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5.04.30 15:58

편지

조회 수 40614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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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나는 폐암 수술을 받았다.

서울의  아산재단 현대 중앙 병원 774호 입원실에 입원한 나에게 한 통의 편지가 왔다.

나는 그의 편지를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중년의 나이에 받아 든 편지를 이제는  노년이 된 나이에 다시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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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형

지난 일요일 형의 병실을 나와 동부터미널에서 이곳 대전까지의 중부고속도로는 비교적 한유한 편이었으며 도로 주변 야산에 핀 진달래는 이제 봄이 완숙되었음을 알리는 듯 아름답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을 문병하고 돌아오는 우리 일행은 (KMC 대전 동문들) 산천에 가득한 봄볕마냥 화사한 마음이기 보다는 어쩌면 그 반대의 무거운 마음으로 짓눌려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들 묵시적으로 눈빛으로만 오가는 형에 대한 위로와 연민의 정이 우리들 자신의 문제와 맞물리는듯한 중년 의사들의 염려 지사이기도 하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의사들의 생활이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그러했듯이 남을 위해서는 열심이었지만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소홀하며 항상 환자들만을 생각하는 외골수(?)의 삶이었기에 불빛을 밝히기 위하여 자기 몸체를 태우면서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촛불처럼 봉사와 희생의 연속이었습니다. 모든 질시와 저항을 받으면서도 인술이라는 미명하에 자기의 몸과 가정을 돌볼 여유는커녕 불철주야 환자의 안위와 조속한 치유를 위해 일구월심 애태워 왔던 이 땅의 의료인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냉혹하였고 강제적 의료보험이라는 시대적 질곡 속에 그나마 설 자리를 찾을 수 없어 어렵게 배웠던 전문 지식을 사장시키면서 말 못하는 스트레스에 몸 둘바를 몰라 했으며, 그 무엇보다 아끼던 입원실과 수술실을 무명의 가게방으로 세를 내 주어야만 했던 한국적 의료 풍토...그런가하면 개원의들은 조그마한 의료 사고가 무서워 환자 앞에 떨고, 가족 앞에 행패 당하며, 인술의 자존심을 땅 바닥에 내 팽개쳐 버린지 오랜 우리의 안타까운 비감....특히나 H형은 같은 전남 의대를 나와 모교의 따뜻한 품속 같은 대학병원에서 훌륭한 은사님들의 온갖 사랑을 받으며 행복에 찬 수련 시절을 보내었고, 좀 더 차원 높은 의료 시혜를 베풀기 위하여 이곳 척박의 땅에 찾아 와 무등의 인술을 펴겠다고 기염을 토하던 지가 벌써 20여년이 흘렀지요. 그때 형은 불철주야 일 하였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 한다고 무던히도 노력 하였고, 누구보다 더 바쁘게 달려온 세월이었기에 시련의 벽도 남달리 높았었지만, 강한 의지력과 남다른 판단력 그리고 투철한 정의감으로 이곳 의료인의 선봉장이 되었던 형이 아니었습니까? 이제 그 형이 야망의 뜻을 다 펴기도 전에 병마에 시달리시니 이 어찌 통한이 무상하리요. 전문 의료인으로서 최선을 다하여 진료하였고, 털끝만큼도 양심의 하자 없이 책대로 시술하여 후송하였건만 개원의라는 취약점이 의료분쟁이라는 법적 상태로 변모 하였을때 오장육부가 틀린 듯 하고 피가 거꾸로 도는 듯한 스트레스를 안고 의사가 가장 싫어하는 법정 투쟁에 섰을때의 그 엄청난 허탈감은 중년 고개를 좌절의 늪으로 전락시키지 않았다고 과연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사필귀정으로 법적 인정은 받았지만 그간의 고통과 갈등은 동문, 동학, 동업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가 이해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그 아픔을 모를 겁니다.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심한 흉통과 체중 감소로 자신의 몸에 무엇인가 변화가 오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케 하는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생로병사의 인생 유전 법칙을 순종하는 자세에서 수용하자면 H형의 오늘의 고통은 오히려 이 중년의 벽을 과감하게 넘어 설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치부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봅니다. 이제 인생 3rd TRIMSTER의 찬란한 생(生)을 재창출 하시고 이미 장성하여 의계의 대로를 걷고 있는 네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서 더욱 심기일전 하시어 이 환란을 기어코 이겨 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초년에 이루었던 개척 시대의 H신화를 다시 한번 중년에 빛을 발 하시어 강인한 의료인으로서의 생명력을 온 누리에 전해 주시옵기 앙망하옵니다. 건강을 조속히 회복 하시어 무사히 퇴원 금의환향 하시기를 내가 믿는 하나님께 진실로 진실로 기도드리옵니다.

 

1992년 4월 6일

대전 윤외과 원장

윤윤호 올림

 

  • ?
    이규당 2015.05.03 23:55

    황당한 message
    황당한 message
    윤원장에게서 온 메시지인가 했는데
    내 사랑하는 윤원장이 글 쓰는데 지장이 있나?
    슬펐는데 마음이 아팠는데.....
    그런데 처제였다.
    "배운 사람이 달라" 란 어휘가 좀 거슬렸던것 같아
    외손자가 물건을 사면
    설명서를 꼭 보기 때문에 거기서 터득했어
    글자도 모르면서  스승은 나이가 없다고
    살아보니 시행 착오도 있어요.
    이제는 배운 사람이 못 배운척 하지 말고
    자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주면해.
    유성 호텔 대중탕 박교수 처럼 족욕 하면서
    중국어 공부하는 그 고귀한 picture.

  • ?
    이규당 2015.05.04 00:23

    일요일 아침 비가 왔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만 들르면서

    망배로 대신 할까 했는데
    나와 약속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고 완주했네요.

    우산을 들고 비에 젖어 미끄러운 산길을 걸어서

    그래서인지 몸이 가볍네요.
    베토벤의 환희를 들으면서 크게 들으면서
    잠을 설쳐 운전중 슬슬 눈이 감겨
    쉼터에 처음 들렀어.
    보성 오미자에 대추로 가미한 차를 한잔했는데

    무사히 대전에 도착
    비가 와도  나와의 약속을 지켜서 흐뭇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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